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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검색어에 홍범도가 뜨는 이유? 영화 봉오동 전투

식꿈 2020. 10. 4. 19:19

안녕하세요. 트렌드를 모아보는 식꿈이 입니다.

오늘은 홍범도가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오고 있는 이유를 알아볼게요.

 

이전의 장영실 포스팅처럼, 홍범도 장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검색하고 있는 이유는

역시 추석특선영화 덕분입니다.

바로 2019년 개봉했던 영화, 봉오동 전투가 추석 특선 영화로 TV에 등장했기 때문인데요.

영화에서는 최민식 배우가 깜짝 등장하여 홍범도 장군 역할을 맡아주었답니다.

이런 영화를 통해 우리가 잊고 지냈던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떠올리고,

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좋은 것 같네요.

 

그럼 오늘은 이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홍범도 장군은 1868년 10월, 평양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젊은 시절은 결코 녹록치 않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 양친을 잃은 뒤 머슴살이를 하거나 절에서 생활하다

노루나 멧돼지를 사냥하는 포수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는 1907년!

일제가 화기 단속을 위해 강제로 총을 수거하려 하자 생계 유지를 위한 항일 투쟁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가온 1910, 경술국치 이후 홍범도는 연해주로 망명한 후

블라디보스토크 등에서 동지들을 모아 한반도를 왕래하며 여러 차례의 유격전을 펼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성과를 거두고 인지도를 쌓게 됩니다.

그리고 19206, 봉오동 전투와 192010, 청산리 대첩에 참여하며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되죠.

 

이러한 인지도를 바탕으로 1920년대 홍범도 장군은 소련 공산당에 입당하여

한인 동포 사회의 핵심 리더 중 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1937년, 이오지프 스탈린에 의한 고려인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수많은 고려인 동포들과 오늘날의 카자흐스탄 지역으로 강제 이주하게 되죠.

이후에는 전쟁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고려인 극장의 수위가 되어 연금을 받으며 생활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1943년 노환으로 사망할 때까지 그는 민족지도자로서

젊은이들에게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독려하거나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물자를 아끼자는 선전 활동에 참여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고 합니다.

스탈린이 사망한 후에는 소수 민족 탄압에 대한 비판이 강해지면서

홍범도 장군 역시 그간의 업적을 인정받아 카자흐스탄에 ‘홍범도 거리’가 생기기도 하죠.

또한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으며,

올해 문재인 정부 역시 카자흐스탄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대한민국으로 모셔오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습니다.

 

항일 투쟁의 역사 속 최초의 승리로 기억되는 봉오동!

그 곳에 있었던 홍범도 장군과 이름모를 독립군들에 대해 더욱 공부해보는 하루가 되면 어떨까요?

식꿈이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